오모이데요코초에서의 기대와 실망
오다이바에서의 시간을 마무리하고 신주쿠의 오모이데요코초로 향했다. 평소에도 오래된 골목길 특유의 분위기를 좋아하는 편이라, 작은 선술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그곳을 직접 보면 얼마나 멋질까 하는 기대가 컸다. 일본의 전통적인 이자카야 감성이 물씬 풍길 것 같았고,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담은 따뜻한 조명이 길을 따라 이어지는 모습을 상상하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오랜 시간 사랑받아온 가게들에서 흘러나오는 일본 특유의 활기찬 대화 소리와 구수한 술 냄새, 철판에서 지글지글 익어가는 꼬치구이의 향이 나를 반겨줄 것만 같았다. 하지만 현실은 내 기대와는 사뭇 달랐다.
막상 도착해보니 생각보다 거리는 짧았고, 인터넷에서 봤던 감각적인 사진들이 거의 전부였다. 골목이 미로처럼 이어져 있을 줄 알았지만, 실제로는 메인 거리 하나와 그 옆으로 두세 개의 짧은 골목이 있는 정도였다. 그나마도 너무 상업적으로 변해버린 느낌이 강해, 내가 상상했던 아날로그적인 감성과는 조금 거리가 있었다. 물론 오래된 간판들과 빛바랜 가게 외벽에서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긴 했지만, 기대했던 것처럼 ‘비밀스러운 아지트’ 같은 느낌은 아니었다.

조금 실망스럽긴 했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온 이상 그냥 돌아가긴 아쉬웠다. ‘분위기라도 한껏 즐겨보자’는 생각으로 가게 안으로 들어가볼까 고민했지만, 문 앞에 붙어 있는 메뉴판의 가격을 보고 잠시 멈칫했다. 지인이 방문전에 외국인들에게 가격을 더 높게 받는 곳이 많다고 했었고, 실제로 가격이 꽤 높았다. 평소 나는 음식에 돈을 아끼지 않는 편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 가격이라면 굳이 여기에서 먹어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금액을 내고 더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면 그게 더 낫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고민 끝에 근처에서 스시를 먹기로 했다. 하지만 예약한 시간이 되려면 아직 꽤 여유가 있었다. 시간을 애매하게 보내기보다는 무언가를 더 보고 싶었고, 마침 다른날 일정에 있던 골든가이가 가까운 곳에 있다는 걸 떠올렸다. 기왕 신주쿠까지 온 김에 먼저 구경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 발길을 돌려 골든가이로 향했다.
뜻밖의 발견, 골든가이
골든가이에 도착하자마자 이곳이 더 마음에 든다는 확신이 들었다. 좁고 낡은 골목길 사이로 작은 바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고, 전체적인 분위기가 오모이데요코초보다 훨씬 더 깊이 있는 느낌이었다. 규모 자체는 크지 않았지만, 거리의 구석구석에서 세월이 느껴지는 공간이었다. 오래된 간판과 낮은 천장, 가게 앞을 가득 메운 손님들까지 모든 것이 완벽하게 어우러져 묘한 감성을 자아냈다.

이곳에서 제대로 자리를 잡고 하루 종일 술을 마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만약 스시야를 예약하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조금 더 여유롭게 왔다면, 이곳에서 몇 시간이고 머물며 골목길을 돌아다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시간이 허락되지 않아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사진을 열심히 찍으며 분위기라도 만끽했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 보니 어느새 예약 시간이 다가왔고, 서둘러 스시야로 이동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호기롭게 최상급 오마카세를 주문했다. 코스로 하나씩 나올 줄 알고 기대했지만, 예상과 달리 한 번에 담아서 나와 당황스러웠다. 알고 보니 여기는 오마카세 전문점이 아니라 일반적인 스시야였는데, 내가 착각한 것이었다. 순간 멘붕이 왔지만, 이미 배가 고파서 깊이 생각할 겨를도 없이 젓가락을 들었다. 다행히 스시 자체는 맛있었고, 기다릴 필요 없이 바로 먹을 수 있다는 점이 의외로 좋았다. 하지만 우니가 없었던 점은 살짝 아쉬웠다. 그래도 전체적으로 만족스러운 식사였고, 배를 든든하게 채운 후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다카시마다이라의 밤
식사를 마치고 신주쿠를 어느 정도 둘러본 후, 다카시마다이라에 있는 지인의 단골 술집에서 한잔하기로 했다. 마치 서울의 노원이나 창동처럼 도심에서 조금 떨어진 곳이라 이동하는 데 시간이 꽤 걸렸다. 처음 가는 지역이라 기대 반, 걱정 반이었지만, 도착한 순간 그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술집은 아주 작고 아기자기한 분위기를 자랑하는 곳이었다. 전형적인 일본식 이자카야 느낌이 물씬 풍겼고, 한눈에 봐도 단골들이 오랜 시간 애정을 쏟았을 것 같은 곳이었다. 내부는 테이블 몇 개와 카운터 좌석이 전부였는데, 오히려 그런 아늑한 분위기가 더 마음에 들었다. 기본 안주로 나온 오토오시는 입맛에 맞지 않았지만, 계란말이는 정말 감탄이 나올 정도로 맛있었다. 겉은 부드럽고 속은 촉촉하게 반숙된 계란물이 가득 차 있어, 한입 베어 무는 순간 입안에서 사르르 녹았다.

이곳의 분위기는 한국과 조금 달랐다. 처음에는 다들 조용히 술을 마시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자연스럽게 옆 테이블과 말을 섞으며 하나의 흐름처럼 이어지는 분위기가 흥미로웠다. 물론 원래 아는 사이일 수도 있지만, 모르는 사람들끼리도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신기했다. 그리고 이 날의 주종은 하이볼이었다. 원래 계획은 막차 시간 전에 적당히 마시고 돌아가는 것이었지만, 지인의 농간으로 시간이 지날수록 술맛이 점점 진해졌다. 처음에는 적당한 농도였던 하이볼이 어느 순간 위스키에 가까운 도수가 되어 있었고, 나중에는 이게 정말 하이볼이 맞는지조차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결국 나는 모든 걸 내려놓고 본능에 몸을 맡겨버렸다. 시간은 흐르고, 계획했던 일정은 점점 잊혀져 갔다. 그리고 그렇게 나는 첫날부터 계획을 박살 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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